"시작이 반이다".
항상 내가 일을 떠나기전 내 가 나 자신에게 거는 주문이다.
지독하게 나가기 싫었든 지난 번 트립은 처음부터 내게 멀고 먼 여정이었다.
날씨가 좋은 봄 부터 10월의 말까지는 항상 배달 시간 보다 4~6시간 먼저 시간을 당겨서 가는 우리들 스케쥴이 이제 지금 부터 로드 사정에 따라,또 변덕스러운 기상 변화에 따라 1~8시간 이 딜레이가 되거나 아님 로드 자체가 닫혀버릴 때가 허다하다.그런 기상변화의 느낌은 록키산을 넘을때부터 시작이다.
지난번 트립에서도 BC주의 레벨스톡을 들어서자마자 잔뜩 찌푸린 날씨는 영락 없이 로저스패스를 들어서니 하이얗게 눈으로 넢힌 산과 들이 나의 발을 얼게 했다.그러나 다행히 계절이 아직 10월 말이 라서 그런지 폭설은 아니었다.
그런 시작으로 나의 지난번 트립은 시작 부터 삐거덕 거리더니만 결국은 토론토에서 1st로드를 배달하고 17번 HWY로 들어선 10월 30일 오후 부터 우리들의 발목을 잡아 버렸다.트럭의 전자 계열 쪽에 문제가 생겼는지 온통 계기판 쪽의 sign판들이 지 멋대로 춤을 추기시작하더니만 결국에는 Sault Ste Marie라는 도시입구에서 아예 기어 자체가 들어 가지 않았다.겨우겨우 프레이트 라이너 딜러 샵을 찾아 트럭을 맡기고 9시간 만에 트럭을 수리하고 WAwa라는 도시 라는 곳으로 트럭 머리를 돌리고 있었는데 트럭에서 또 고장 사인이 뜨고 있었다.
아예 이번엔 hill에서 트럭이 멈추어 버렸다.
앞이 캄캄했다! 시간은 이제 겨울이 되어summer time이 시작되는 시점이라 밴쿠버 타임으로 오후 4시가 되면 하루는 어둠으로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 된다.
남편과 난 야광 sign판을 길게 트럭 뒤로 설치 해놓고 트럭으로 걸어 오는 중이었다.그때였다.반대편 차선에서 들려오는 소리"May I help you?"너무 너무 반가운
소리라서 난 달려 오는 차량의 불빛이 비취이는 곳으로 한 걸음에 뛰어 가서
무조건 "help me please....." our truck was....."무슨 말을 얼케 했는지도 모르게 많은 말을 떠들어 된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말을 끝으로 난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리고 엉엉 울어 버렸다.아무도 없는 적막하고 한적한 시골 동네의 산 꼭데기에서 만난 이국의 천사! 우리들에게 말 그대로 그 사람은 천사 였다.
남편은 이런 내가 안스러웠으면서도 한편으로 창피했단다.
Bill이라는 그 젊은 청년은 WAWA라는 동네에 사는 동네 주민이었는데 moose사냥을 갔다가 우리들의 트럭을 보고 멈추어 우리들을 도와 주었다. Bill이 주는 tow
truck의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만 30분도 되지 않아 달려 와 주었다.
근데 그 분도 역시 천사였다.repair shop이 우리들이 있는 언덕에서 9km만 가면 된다고 우리들의 트럭이 아직 파워가 있는 것 같으니 자기가 시키는데로 하면
될것 같다고 시간당 차지인 $300을 포기하고 우리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트럭은 repair shop까지 가지 못하고 동네 초입인 truck stop
에서 완전히 no power가 되어 버려 주유소 입구에서 멈추어 버렸다.시간은 현지 시간으로 밤 9시였다.우린 Bill이 가르켜 준 repair shop에 전화를 했다.
워낙 칼 퇴근,칼출근 시간을 하는 그네들이라 12시간 뒤인 아침 9시에 우리트럭을 보러 온다고 했다.트럭의 형편은 엉망! 유리 창문은 남편이 운전을 하느라 다내린 상태라 파워가 없으니 유리 창문을 올리지를 못하는 상태였다.우린 아쉬운대로 쓰레기 봉지로 창문을 막고 이불을 있는대로 다 뒤집어 써고 잠을 청했다.
주유구 입구에서 차가 멈추어 버려 기름을 넣으로 온 트럭들이 다소 불편했을텐데 몇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들의 입장을 안되어 하면서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고 다른 주유구에서 줄을 서고 기달려 주었다.난 이때까지 백인들에 대한 선입관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같은 동료 드라이버라서 그런지 그들은 아무도 우리들에게
짜증을 내거나 욕을 하지 않았다.어찌되었든 아침이 되자 repair shop보스가 와서
우리들의 형편을 보더니만 떨고 있는 나를 자기 트럭 안으로 들어 가서 기달리라고 했다.너무나 고맙고(워낙 시골이라 편의 시설이라곤 조그만 식당 하나였다)
그의 마음슴슴이가 이뻐서 안아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힘들게 꺼진 파워를 살려
그의 샵까지 우리 트럭을 토우 해서 거의 21시간만에 트럭을 고쳤다.
이름 있는 Freight Liner 에서도 고치지 못하고 우리들의 시간과 돈을 낭비 했는데
시골 이름 없는 repair shop에서 거의 완벽하게 트럭을 고쳐 주었다.
그것도 출장 나온 이동 출장 수리비는 받지 않았단다.내 계산으로 몇 천불이 나올것 같은
생각을 했는데 의외로 그는 $500 이라는 숮자로 또 한번 나를 감격 시켰다.
천사는 곳곳에서 우리를 도와 주었다.아침9시에서 저녁 5시간의 하루 풀 타임으로 우리 트럭에 매달려 수고를 했는데......어찌되었든 난 그에게 내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 안되는 영어로 고맙다는 말을 했더니만 그의 말" 자기도 폴랜드에서 이민을 와서 고생을 해서 아들 하나 잘 키워 그의 아들이 캘거리에서 lawyer로 일 하고 있으니 자기는 성공 한것 아닌냐고?" 그래서 자기는 그냥 일 자체도 양심껏 자기가 받을 만큼 받는다고..또 쬐그만 동양 여자가 살아 보겠다고 얘를 쓰는게 안되어 보였는지..... 남편과 난 정말 이번 트립에서 고생은 했지만 결코 세상은 우리가 생각 한 만큼 냉혹 하지도, 삭막 한게 아니고 피부 색도, 언어도 틀리지만 사람이 살아 가는 방식은 똑 같다고, 느끼는 감정도.....
이제 내가 그에게 보답 하는것은 열심히 살아가고, 또 성실히 살면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국적과 피부 색을 떠나서 도움을 주어야 겠다고.. 혹 이글을 북미주의 트럭커 여러 분들이 읽고 있다면 온타리오 WAWA(Hwt17 east)의 ZM repair shop을 기억 해서 트럭 수리가 필요 할때들려 봐달라고 부탁을 드립니다.정말 착한 천사 같은 repair man이 기달리고 있을테니까.....
이제 트럭이 트립 중에 고장이 나도 다시는 프레이트 라이너 로 는 가지 않을것이다.비록 이름 없는 수리점이라도 그 사람이 성실한 수리를 해 준다면 무엇을 더 바래겠냐고....물론 더 이상 우리들의 트럭이 문제 발생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올 한해 트럭 수리 비로 몇 만 불이 나간것 같다.그래서 새 트럭으로 바꾸고 싶어도 억울해서 바꿀수가 없다.물론 바꿀 돈도..... ㅠㅠ
이제 또 겨울이 온다. 몇몇 도시엔 버얼써 눈이 오고....트럭 를 고치고 오는 중에
내 방심으로 승용차 하나를 긁어 버렸다.그제께 회사에 가서 사고 보고를 하고 나니 멍~ 하니 정신이 없었다. 남편은 이건 사고도 아니니 걱정 하지 말고 앞으로 안전 운전을 하라고 주님게서 너 에게 경고를 한것 같으니 정신 바짝 차리란다. 지난 3년 동안의 시간들을 돌아 보니 면허를 딴 처음 1~2년은 바짝 긴장해서
얼어 있어 안전운전을 했는데 최근의 난 이제 조금 일을 안다고 가속에다, 또 오만과 온갖 교만으로 내 마음 하나에 자신감이 가득 찬 운전으로 방심과 부주의 투성인것 같았다.이제 조심해야지....집으로 오는 중에 남편의 친구에게 들은 지난번 회사의 동료 Harby의 비보를 들었다.토론토 근교 외곽 갓길에서 트럭을 고치다가 뒤에서 오는 트럭이 그의 트럭을 보지 못하고 트럭 밑에서 수리를 하고 있는
그와 그의 팀 운전자를 트럭과 함게 그대로 밀어 버려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었다."Harby."..언젠가 BC Golden에서 자기 트럭이 고장이 나서 집으로 돌아 가야 한다면서 우리들의 트럭에 올라 타서 같이 BC로 들어 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조그맣고,마치 옛날 한국의 금복주라는 주류 회사의 트레이드 마크인 아저씨를 닮은 그! 언제나 유쾌하고 호탕한그! 그가
그렇게 비참하고 억울하게 죽었단다.아직도 우리들의 트럭 침대엔 그의 체온이 남아 있는것 같은데...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형체도 알아 볼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얼굴을 보고 하룻 동안 실신을 했단다.그렇치 않겠는가? 사랑하는 아버지가 그렇게 허망하고 억울하게 가셨는데.... 그의 비보를 듣고, 또 이번 우리들의 트럭의 2번의 고장과 위니펙에서의 나의 접촉사고,기타 여러가지의 이유로 난 집으로 돌아 와서 바로 일을 나가지 못했다. 너무나 앞을 알수 없는 트럭커들의 삶! 이제 겨우 3년 차인 내가 이런 내 job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데 십년이 넘은 내 짝꿍의 마음은 어떠 할까?
워낙이 말수가 적고, 본인의 마음을 잘 표현 하지 않는 그도 이번 Hayby의 죽음으로 마음이 착찹한지 며칠 일을 쉬자고 했다.우리가 그의 비보를 들었을때 벌써 장레식이 끝나고 몇달이 지나서 내가 할수 있는 거라곤 어제 성당에 가서 그를 위해 연미사 신청을 한것 뿐이었다.
이제 하늘 나라로 간 그가 편안한 안식을 가지기를 바라면서 삼가 고인의 죽음에 애도를 표 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또 우리도 겨울 속으로 들어 가 알수 없는 우리들의 삶으로 전진을 해야 합니다. 바람이 불든, 눈이 오든, 53feet의 긴 트레일러 와 함께 길고 긴 우리들의 삶을 오직 운명이라는 두 글자에 의지 하면서 긴 여정을 떠나야 합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함께 하는 행복한 길이 되기를 기도 하면서....
아침 햇살이 찬란 하게 비추이는 시간...우리들 트럭 커들의 삶은 이렇게 이른 아침 부터 해가 지는 저녁 시간 까지 하루 24시간 아무도 알수 없는 그들의 미래를
위해 열심리 살아 간다. 파이팅 ! 트럭커들이여.....
같은 시간대를 살아 가는데 어느 곳은 펑펑 눈이 내리고 이 곳 처럼 아직도 맑은 가을 날이다.사진은 마니토바주의 이스트 바운드의 초입인 브랜든 입구.
BC의 Rogers Pass입구 벌써 눈이 내려 온 대지가 하이얗게 덮혀 있었다.
눈내린 삭막한 곳에서 간혹 드라이버들이 던져 주는 먹거리를 받아 먹는 약은 까마귀들.
마니토바 주와 온타리오 주 바운드리가 가까운 휴게실에서 잠시 로그 북을 기록중. 멀리 stop sign이 뵌다. 내 삶도 잠시 스탑중....
35th1st 로드를 배달하고 밴쿠버로 오는중 트럭 전자 게열 쪽에 문제가 생기고 있었다.
계기판의 온 작동이 스탑 되고 파워 자체가 다운 되어 버렸다.
Sault Ste Marie라는 동네의 프레이트 라이너의 딜러 샵.이곳에서 트럭을 고치기 위해 9시간을 기달려 고쳤는데....
온타리오 WAWA의 트럭 스탑에서 트럭이 아예 다운 되어 밤새 얼음 덩이의 트럭 안에서 얼어 버린 몸을 스티브의 트럭 안에서 녹이고 있는중 불쌍한 내 짝꿍을 몰래 찰각...멀리 트럭 창문에 붙혀진 쓰레기 봉지가 보인다.
ZM repair shop비록 프레이트 라이너의 웅장하고 큰 샵은 아니지만 작고 초라한 이 곳에서 우리는 트럭을 고쳐 밴쿠버 가지 무시하게 왔다. thank you Steave! ^^
집으로 오는 중 마니토바 HWA100 by pass에서 작은 접촉 사고를 내었다. 원래 썩고 낡은 차였는데 차주인이 나에게 덤탱이르 씌울료고 하길래 무조건 보험 처릴,하자고 했다.워낙이 깐깐한 보헌회사 사람들이 시시비를 가려 주기를... 그치만 내가 잘못 한것 같기는 하다. 이번 트립에선 워낙이 정신줄을 놓았으니....
'Dia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수 없는날,그리고 다시 준비하기. (0) | 2011.12.31 |
---|---|
가족미사,그리고 가을 나들이. (0) | 2011.11.07 |
삶이란? (0) | 2011.10.08 |
엄마께 드리는 편지. (0) | 2011.09.20 |
더두 말구, 덜두 말구 한 가위 같이만..... (0) | 2011.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