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 밤 어렵게 안토니오 형제님 부부를 만나 저녁을 먹게 되었다.
한국에서 잘 나갔던 회사를 마음 아프게 접고 이 곳 밴쿠버에 있는 식구들
곁으로 왔다가 우리 부부가 하는 이 비즈니스에 관심을 가지고 이것 저것 물어 보시더니 결국엔 트럭 면허증을 취득을 하셨단다.
면허를 따자마자 워낙 남에게 신세 지기를 싫어 하시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어렵게 트레이닝을 부탁을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내가 금방 면허를 따서 열심히 남편에게 구박과 핍박을 받으면서 열일 하고 있는 때 였기에 다른 누군가를 다시 받아드려 도움을 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그 분과 인연이 끊어진지 1년만에 그 분 부부를 어렵게 만나게 되었다.
그 것도 서로가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일을 하면서 갑자기 남편이 그 분 일이 궁금하다고 해서 연락을 하게 되어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다 D께서 역사를 하시는 것인지 그 분 부부가 우리가 전화를
했을때 그 분들도 우리들을 생각을 하면서 어려움을 도움 받고 싶어 했단다.
지난 1년 동안 형제님의 가정엔 많은 일이 있었단다.
면허 취득을 하고 이곳 저 곳으로 일 자리를 알아 보는 도중에 우연히 성당 교우 중에 인디펜던트로 이 사업을 하고 있는 K씨라는 분이 그 분께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서 같이 토론토로 가자고 하더니 많은것을 요구를 했다고 한다.
이 트럭일을 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 타입의 일이 있다.
그냥 트럭 회사에 말 그대로 취직을 하는 "Company Driver가 있고 또 다른 방식에는 내 트럭을 사서 회사에 지입을 해서 20~25%의 수입을 때어 주는 Owner Operate가 있다.후자는 회사에서 모든것을 대신 해서 로드를 따 주는 대신 수입의
몇%을 가지고 간다.콤파니에 고용 되어 일을 하면 그 나름 대로 장점이 있지만 수입이 오너 오퍼레이터 의 3분의 2 정도가 되니 될수있으면 모든 트럭커들이 할부를 신청
해서라도 자기 트럭을 살려고 한다.물론 트럭을 소유 하다 보면 지금 우리들처럼 여러 가지 문제 점들이 많다. 어떨때는 트럭의 잦은 고장으로 수입 보다 지출이
더 많을 때도 있다.그 때가 매 달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들 트럭의 나이가 많이 되었기 때문에 월 평균 트럭 수리비로 $2000은 생각을 해야 한다.
또 다음엔 안토니오 형제님에게 피해를 준 K씨 같은 Independent Business로 회사에도 소속 되지않고 개인이 바로 broker와 연결을 해서 일을 따내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으로 이 사업을 할려면 우선 영어도 perfect해서 브로커들에게 자기 의사를
분명히 말할수 있어야 하고 항상 기름 값 만큼을 은행 잔고로 두어야 피해를 보지 않는다.한국인으로 이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 되지않는다.혹 하다가도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많이 심각 해져 중도 포기를
한 한국 분들이 몇명이 되는걸로 알고 있다.
어찌되었든 안토니오 형제님은 이 k씨에게 트레이닝 비용 조로 얼마를 착취(?)당하고 취직을 시켜준다는 명분으로 이 곳 밴쿠버에서 토론토 까지의 왕복 비행기 사용료,또 수개월 동안의 홈 스테이비용등 여러가지 이유로 돈을 뜯어 내었다가 결국에는 자기 트럭을 인수 받으라고 하더니 또 J 라는 토론토 교민에게 소개를 하고는 본인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안토니오씨의 비극은 거기서 끝이 나지 않았다.
소개 받은 J씨라는 분이라도 그 분께 최선을 다해서 트레이닝과 취직을 시켜 주었으면 지금쯤 트럭커의 삶을 살고 있을텐데....
그 J씨는 형제님을 3개월 동안 토론토 A라는 인도인이 하는 중소 기업의 트럭킹 회사에 같이 들어가 일을 하면서 북미주의 몇개 주에서 갖은 횡포를 다 했다고 한다.
결국에는 미국 조지아주의 어느 트럭 스탑에서 형제님과 사소한 말다툼을 하고 난 뒤에 그 분을 그 곳에 떨어뜨리고는 혼자 가버렸다고 한다.이것은 인권 유린이다.
이 곳 백인 들에게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이 분야에선 완전히 매장되고 그 것은 살인 행위라고 도 한다.워낙 말수가 적고 점잖은 그 형제님은 그렇게 그 울분을 삼키고
다시 6개월 만에 이 곳 밴쿠버로 돌아와 다시는 트럭 운전은 뒤도 돌아 보기 삻다고 하셨다.도저히 우리 부부는 그 두 사람을 용서 할수가 없고 이해가 되지않았다.
그 분께 들은 말은 이것 말고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두 사람도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지라 또 안토니오 씨가 문제가 크게 확산 되는게 싫다고 해서 내 울분만을 표현 하다 보니 이렇게 밖에 글을 올릴수가 없다.
좁은 교민 사회라 K씨라는 사람은 안토니오 형제님 말고 또 다른 밴쿠버 한국 트럭커 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동부 캐나다로 도피를 했단다.또 그J씨라는 사람은 현재 트럭 콤파니에서 요주의 인물로 낙인이 찍혀 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럽고 한탄할 일인가! 같은 교포들끼리 서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의 피 까지 빨아 먹다니....
어제 우리 부부는 형제님께 이야기를 듣고 정말 죄 지은 기분이었다.
처음 트럭 면허를 따고 모든일이 잘 될거라고 그렇게 행복해 하셨던 모습이 눈 앞에 선한데.. 우리만이라도 자주 연락을 드렸음 그렇게 까지 피해는 당하지 않았을텐데..그냥 우리 먹고 살기 바쁘니까 마냥 시계추 처럼 대륙만 왔다 갔다 일을 했지 인간적으로 내 이웃을 생각 한적이 얼마나 되었을까?
이 일을 하고 부터 이 곳 밴쿠버에서 피붙이라곤 아들 녀석 하나인데 그 아들 얼굴 조차 자주 보지 못하니... 당연히 이웃을 생각 하는 여유는 더 없었다.
이게 이민 사회의 실정일까? 아니면 각박하게 살아 가는 이 현대사의 비극일까?
이제는 밥 은 먹고 사니까 너무 일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 되는데...
오늘도 난 불안 하다. 일 중독이 되어 버려 일을 나갈려고 하는데 이렇게 로드가 없는 날에는 괜스레 마음이 심란해지니 그 형제님은 얼마나 더 힘이 드실까?
하루 속히 다시 마음을 추슬려 힘들게 딴 그 면허증이 헛되지 말았음 좋겠다.
먼저 우리가 있었던 M을 소개 시켜 주었는데 그 분께서 혼자 가실련지...
그리고 정말 하느님께서 선 악을 벌 주신다면 그 K씨와 J씨를 다시는 힘 없고 약한
안드레아 형제님 처럼 당하는 제 2, 3의 피해자가 나지 않도록 벌을 주셨음 좋겠다.
이 이민 사회가 밝고 희망찬 사회가 되도록....
스탠리 파크 .멀리 퍼시픽 무역센터가 보인다.
이 아름다운 도시 밴쿠버의 한국 교포들.이 강물처럼 모두가 맑고 깨끗했음 좋겠가.
밴쿠버 스탠리 파크 안에 토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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